과학으로 증명된 비아맥스의 성 건강 효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함어민영
조회 4회
작성일 25-12-08 08:51
본문
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과학으로 증명된 비아맥스의 성 건강 효과
서론
성 건강은 전반적인 웰빙과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최근 몇 년간 성 건강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품과 방법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비아맥스ViMax는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입증된 대표적인 성 건강 보조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비아맥스는 남성의 성 기능을 개선하고 전반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비아맥스의 성 건강 효과를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비아맥스의 주요 성분과 작용 메커니즘
비아맥스는 천연 성분으로 구성된 보조제로, 주로 남성의 성 건강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주요 성분으로는 L아르기닌,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 마카 뿌리, 인삼, 징크아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성분은 다음과 같은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성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L아르기닌: L아르기닌은 체내에서 산화질소NO 생성을 촉진하는 아미노산입니다. 산화질소는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는 발기 기능 개선에 직접적으로 기여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L아르기닌은 남성의 발기 부전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 이 허브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성욕과 성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입니다.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는 또한 성적 흥분을 증가시키고 성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마카 뿌리: 마카 뿌리는 남성의 성욕과 성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 보충제입니다. 마카 뿌리는 체내 에너지 수준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전반적인 성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인삼: 인삼은 전통적으로 에너지와 활력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인삼은 또한 혈류를 개선하고, 성적 성능을 향상시키며, 전반적인 성 건강을 지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징크아연: 아연은 남성의 생식 건강에 필수적인 미네랄입니다. 아연은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촉진하고, 정자 생성을 지원하며, 전반적인 성 기능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비아맥스의 성분들이 성 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아래는 주요 연구 결과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1. L아르기닌과 발기 기능 개선
2002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L아르기닌은 발기 부전을 겪는 남성에게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보였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6주 동안 L아르기닌을 복용한 후, 발기 기능과 성적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L아르기닌이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 기능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2.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와 테스토스테론 증가
2012년 진행된 연구에서,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는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증가시키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 추출물을 복용한 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 30 증가했으며, 이는 성욕과 성적 성능의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3. 마카 뿌리와 성적 기능 향상
2002년 발표된 연구에서, 마카 뿌리는 남성의 성적 기능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12주 동안 마카 뿌리를 복용한 후, 성욕과 성적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한, 마카 뿌리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감소시켜 전반적인 성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4. 인삼과 성적 성능 개선
2013년 발표된 연구에서, 인삼은 남성의 성적 성능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인삼 추출물을 복용한 후, 발기 기능과 성적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인삼은 또한 혈류를 개선하여 성적 성능을 지원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5. 징크아연와 생식 건강
2016년 발표된 연구에서, 아연은 남성의 생식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 참가자들은 아연을 꾸준히 복용한 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증가했으며, 정자 생산량과 질이 개선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아연이 남성의 성 건강을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아맥스의 종합적 효과
비아맥스는 위에서 언급한 성분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남성의 성 건강을 종합적으로 지원합니다. 비아맥스를 꾸준히 복용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발기 기능 개선: L아르기닌과 인삼이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 기능을 개선합니다.
성욕 증가: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와 마카 뿌리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증가시켜 성욕을 높입니다.
성적 성능 향상: 인삼과 마카 뿌리가 성적 성능을 향상시키고, 성적 만족도를 높입니다.
전반적인 건강 증진: 징크아연가 생식 건강을 지원하고, 전반적인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결론
비아맥스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성분들을 통해 남성의 성 건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효과적인 보조제입니다. L아르기닌, 트리뷸러스 테레스트리스, 마카 뿌리, 인삼, 징크아연 등의 성분들은 각각의 고유한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발기 기능 개선, 성욕 증가, 성적 성능 향상, 전반적인 건강 증진에 기여합니다.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비아맥스의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이는 남성의 성 건강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 건강은 단순히 신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 웰빙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아맥스와 같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보조제를 활용하여 성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 admin@slotnara.info
<각전(各電)>‧<거전(去電)>‧<내전(來電)>‧<전신존근(電信存根)>(1, 2) 등 4건의 자료는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 전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나 그 후신인 외무아문과 각 지방 관아 및 재외공관이 서로 주고받은 전신을 모아둔 기록들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주로 외교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지만,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것들도 들어있다. 다른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자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기왕의 자료들을 좀 더 튼튼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황금성릴게임사이트
각전 1894년 5월 2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각전(各電)
문서에는 양식지에는 <통서발전존근(統署發電存根)>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존근’은 부본(副本)이라는 의미이므로 이 문 바다이야기부활 서는 통리교섭통사사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전신의 부분을 모아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료의 배치는 <통서>에서 전신을 보낸 기관별로, 기관 안에서는 날짜순으로 되어 있다. 대략적인 순서를 보면 먼저 경상감영에 보낸 1894년 3월 19일부터 7월18일까지의 전신, 다음에는 전라감영에 보낸 4월 22일부터 6월 20일까지의 전신, 이어서 충청감영에 백경릴게임 보낸 1894년 2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의 전신, 그 다음에는 1894년 1월 9일부터 4월 22일까지 의주부윤에게 보낸 전신, 주일조선공사관으로 보내는 1월 8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전신이 35건 정도, 천진주재 조선공관에 보낸 5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의 전신 6건 정도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부산감리서에 보낸 전신 1건이 실려 있다.
바다이야기프로그램동학농민혁명 관련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4년 5월에 충청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아산 및 성환 일대 일본군의 남하나 청국군의 철군 여부 등과 관련된 동향이 들어있다. 1894년 5월 22일 전신에는 동학농민군의 ‘괴수’가 고부에 있다는 내용, 6월 15일과 16일, 6월 20일에는 쿠기키(釘木)와 요시쿠라(吉倉) 등 일본인 야마토게임 낭인(浪人) 집단 14명이 호조(護照)도 없이 순창으로 들어가 동학농민군‘수괴’와 만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편, 1894년 7월 9일, 7월 24일 전라감영으로 보낸 전신에는 익산 성당포구를 통해 프랑스 선교사를 서울로 안전 호송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만약 프랑스 선교사가 중도에 공격을 받아 상해를 입을 경우 양국 간의 友誼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거전 1894년 8월 1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거전(去電)
1894년 8월 7일부터 1895년 11월 15일 사이에 갑오개혁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후신으로 만들어진 외무아문에서에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해외 공관 등으로 보낸 전신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날짜순으로 기록하면서 발신일과 수신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신자를 상단에 붉은 글씨로 표시해두고 있다. 1894년의 기록은 모두 외무아문에서 보낸 전신이고, 1895년에 들어서는 외무아문뿐만 아니라 내무아문 등 각 부서에서 보낸 기록이 함께 들어있지만, 1895년 4월경부터는 대부분의 문서가 내용은 생략된 채 문서번호와 발신 및 수신처만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4년 8월 10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절단된 대구-전주 간 전선을 일본군으로부터 전선을 빌려서 빨라 수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7월 초순부터 전선파괴 등 조선인들의 반일투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그와 관련된 전신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다. 8월 18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총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상처를 입고 구타당한 일에 대해 이미 일본 영사와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이 들어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체로 8월 22일 혹은 24일 무렵부터 일본군과 농민군의 접전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8월 18일 이전부터 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외에도 평양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 노즈 미치츠라(野津道貫) 사단장에게 보낸 축하 전신, 8월 29과 29일에는 안동과 갈평, 적성, 용궁, 예천 등지의 농민군 동향을 전하고 있다. 9월 4일과 5일에는 동래부사가 농민군과 내통하였다는 내용, 9월 18일과 21일에는 하동과 성주농민군의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으며, 9월 27일 주인천 일본 영사에게 보낸 전보에는 청주 병영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워 농민군 17명을 참획(斬獲)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9월 29일에는 전교리 이용호가 안동 부근에서 밀지를 거론하며 민심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 10월 20일 충청감영에 보낸 전보에는 일본군이 농민군 초멸을 위해 내려가니, 이들이 지나는 각 읍에 일본군을 책응(策應)하는 방법을 별도로 지시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11월 4일 평양 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해주에서 농민군이 일어나 황해 감사가 봉욕을 당한 사실, 11월 7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간민(奸民)’들이 전선을 절단하는 일을 엄금할 것을 지시하는 것과 홍주목이 농민군에게 패배하여 점령된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12월 7일, 8일에는 김개남을 생포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서울로 압송하라는 내용과 김개남이 참수된 사유에 대해 보고하라는 내용, 그리고 체포된 전봉준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거(檻車)에 실어 서울로 압송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12월 17일 전라 감영에 보낸 전신에도 체포된 손화중을 반드시 살려서 압송하고 절대 죽이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내전 1894년 9월 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내전(來電)
<거전(去電)>과 반대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부(府), 해외 주재 공관 등으로부터 외무아문(外務衙門)으로 보낸 전신을 기록한 것이며, 1894년 9월 1일부터 1895년 11월 16일까지의 전신이 실려 있다. 날짜순으로 기록하였으며 상단에 각 내용마다 붉은 글씨로 관련된 기관 발신자를 따로 표시하여 식별하기 쉽게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특기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9월 16일 경상 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충경포>의 명의로 통문을 돌리고 척일(斥日)을 위해 인근 고을의 농민군이 모이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호남의 농민군 수 만명의 서울을 향해 간다는 소문이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9월 17일부터 3일에 걸쳐서는 밀양민란, 성주 및 하동 농민군 동향, 호남 농민군 수만명이 진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 선산, 인동, 김산, 성주, 지례에서 농민군이 일어났다는 사실, 진주를 점령했던 농민군이 수백명씩 나뉘어 고성 사천 곤양 단성 남해 합천 등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선산, 인동, 김산 등지의 농민군이 선산 수령에게 사통(私通)을 보내 자신들은 북접이고, 남접인 전봉준과 서장옥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했으며, 8도의 북접 교도들이 각자 호신용 무기를 들고 일시에 모여 일본인을 토벌하려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11월 6일 경기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서산, 태안 농민군 지도자로 유상태(柳相台), 박덕삼(朴德三)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들이 예산 신례원과 홍주성 전투를 치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고나군에 의한 민간 약탈, 내포지역과 서천, 한산, 금산, 용담 등지의 농민군과 민보군의 활동, 전봉준이 11월 19일 논산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금구로 후퇴한 사실, 김개남이 청주에서 남원으로 패주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각기 순창, 태인, 고창에서 체포된 사실과 일본군이 12월 초순 광양 순천에 도착한 이후 포살한 비괴접주들이 229명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전신존근 2 1894년 5월 8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전신존근 1 1894년 10월 2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전신존근(電信存根)(1, 2)
<전신존근(電信存根)>(1)에는 외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1894년 10월 18일부터 1895년 1월 18일까지의 전보,< 전신존근(電信存根)>(2)에는 외무아문에서 인천감리서로 보낸 1894년 1월 6일부터 6월 18일까지의 전신의 부본(副本)이 수록되어 있다. <전신존근(電信存根)>(1)의 내용 대부분은 거전과 겹치며, <전신존근(電信存根)>(2)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이 거의 없으며, 1894년 5월과 6월 당시 청일군의 조선 진출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기록되어 있다.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황금성릴게임사이트
각전 1894년 5월 2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각전(各電)
문서에는 양식지에는 <통서발전존근(統署發電存根)>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존근’은 부본(副本)이라는 의미이므로 이 문 바다이야기부활 서는 통리교섭통사사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전신의 부분을 모아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료의 배치는 <통서>에서 전신을 보낸 기관별로, 기관 안에서는 날짜순으로 되어 있다. 대략적인 순서를 보면 먼저 경상감영에 보낸 1894년 3월 19일부터 7월18일까지의 전신, 다음에는 전라감영에 보낸 4월 22일부터 6월 20일까지의 전신, 이어서 충청감영에 백경릴게임 보낸 1894년 2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의 전신, 그 다음에는 1894년 1월 9일부터 4월 22일까지 의주부윤에게 보낸 전신, 주일조선공사관으로 보내는 1월 8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전신이 35건 정도, 천진주재 조선공관에 보낸 5월 17일부터 6월 19일까지의 전신 6건 정도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부산감리서에 보낸 전신 1건이 실려 있다.
바다이야기프로그램동학농민혁명 관련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4년 5월에 충청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아산 및 성환 일대 일본군의 남하나 청국군의 철군 여부 등과 관련된 동향이 들어있다. 1894년 5월 22일 전신에는 동학농민군의 ‘괴수’가 고부에 있다는 내용, 6월 15일과 16일, 6월 20일에는 쿠기키(釘木)와 요시쿠라(吉倉) 등 일본인 야마토게임 낭인(浪人) 집단 14명이 호조(護照)도 없이 순창으로 들어가 동학농민군‘수괴’와 만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편, 1894년 7월 9일, 7월 24일 전라감영으로 보낸 전신에는 익산 성당포구를 통해 프랑스 선교사를 서울로 안전 호송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만약 프랑스 선교사가 중도에 공격을 받아 상해를 입을 경우 양국 간의 友誼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거전 1894년 8월 1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거전(去電)
1894년 8월 7일부터 1895년 11월 15일 사이에 갑오개혁에 따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후신으로 만들어진 외무아문에서에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해외 공관 등으로 보낸 전신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날짜순으로 기록하면서 발신일과 수신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신자를 상단에 붉은 글씨로 표시해두고 있다. 1894년의 기록은 모두 외무아문에서 보낸 전신이고, 1895년에 들어서는 외무아문뿐만 아니라 내무아문 등 각 부서에서 보낸 기록이 함께 들어있지만, 1895년 4월경부터는 대부분의 문서가 내용은 생략된 채 문서번호와 발신 및 수신처만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4년 8월 10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절단된 대구-전주 간 전선을 일본군으로부터 전선을 빌려서 빨라 수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7월 초순부터 전선파괴 등 조선인들의 반일투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그와 관련된 전신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다. 8월 18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총에 맞아 죽거나, 칼에 찔려 상처를 입고 구타당한 일에 대해 이미 일본 영사와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이 들어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대체로 8월 22일 혹은 24일 무렵부터 일본군과 농민군의 접전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8월 18일 이전부터 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이다. 이외에도 평양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 노즈 미치츠라(野津道貫) 사단장에게 보낸 축하 전신, 8월 29과 29일에는 안동과 갈평, 적성, 용궁, 예천 등지의 농민군 동향을 전하고 있다. 9월 4일과 5일에는 동래부사가 농민군과 내통하였다는 내용, 9월 18일과 21일에는 하동과 성주농민군의 움직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으며, 9월 27일 주인천 일본 영사에게 보낸 전보에는 청주 병영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워 농민군 17명을 참획(斬獲)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9월 29일에는 전교리 이용호가 안동 부근에서 밀지를 거론하며 민심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 10월 20일 충청감영에 보낸 전보에는 일본군이 농민군 초멸을 위해 내려가니, 이들이 지나는 각 읍에 일본군을 책응(策應)하는 방법을 별도로 지시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11월 4일 평양 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해주에서 농민군이 일어나 황해 감사가 봉욕을 당한 사실, 11월 7일 경상감영에 보낸 전신에는 ‘간민(奸民)’들이 전선을 절단하는 일을 엄금할 것을 지시하는 것과 홍주목이 농민군에게 패배하여 점령된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12월 7일, 8일에는 김개남을 생포했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서울로 압송하라는 내용과 김개남이 참수된 사유에 대해 보고하라는 내용, 그리고 체포된 전봉준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거(檻車)에 실어 서울로 압송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12월 17일 전라 감영에 보낸 전신에도 체포된 손화중을 반드시 살려서 압송하고 절대 죽이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내전 1894년 9월 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내전(來電)
<거전(去電)>과 반대로 각 지방의 감영이나 감리서(監理署), 부(府), 해외 주재 공관 등으로부터 외무아문(外務衙門)으로 보낸 전신을 기록한 것이며, 1894년 9월 1일부터 1895년 11월 16일까지의 전신이 실려 있다. 날짜순으로 기록하였으며 상단에 각 내용마다 붉은 글씨로 관련된 기관 발신자를 따로 표시하여 식별하기 쉽게 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특기할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9월 16일 경상 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충경포>의 명의로 통문을 돌리고 척일(斥日)을 위해 인근 고을의 농민군이 모이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호남의 농민군 수 만명의 서울을 향해 간다는 소문이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9월 17일부터 3일에 걸쳐서는 밀양민란, 성주 및 하동 농민군 동향, 호남 농민군 수만명이 진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 선산, 인동, 김산, 성주, 지례에서 농민군이 일어났다는 사실, 진주를 점령했던 농민군이 수백명씩 나뉘어 고성 사천 곤양 단성 남해 합천 등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선산, 인동, 김산 등지의 농민군이 선산 수령에게 사통(私通)을 보내 자신들은 북접이고, 남접인 전봉준과 서장옥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했으며, 8도의 북접 교도들이 각자 호신용 무기를 들고 일시에 모여 일본인을 토벌하려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11월 6일 경기감영에서 보낸 전신에는 서산, 태안 농민군 지도자로 유상태(柳相台), 박덕삼(朴德三)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들이 예산 신례원과 홍주성 전투를 치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고나군에 의한 민간 약탈, 내포지역과 서천, 한산, 금산, 용담 등지의 농민군과 민보군의 활동, 전봉준이 11월 19일 논산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금구로 후퇴한 사실, 김개남이 청주에서 남원으로 패주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각기 순창, 태인, 고창에서 체포된 사실과 일본군이 12월 초순 광양 순천에 도착한 이후 포살한 비괴접주들이 229명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전신존근 2 1894년 5월 8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전신존근 1 1894년 10월 20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공 제공
△전신존근(電信存根)(1, 2)
<전신존근(電信存根)>(1)에는 외무아문에서 각 지방 관아에 보낸 1894년 10월 18일부터 1895년 1월 18일까지의 전보,< 전신존근(電信存根)>(2)에는 외무아문에서 인천감리서로 보낸 1894년 1월 6일부터 6월 18일까지의 전신의 부본(副本)이 수록되어 있다. <전신존근(電信存根)>(1)의 내용 대부분은 거전과 겹치며, <전신존근(電信存根)>(2)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이 거의 없으며, 1894년 5월과 6월 당시 청일군의 조선 진출과 관련된 내용이 일부 기록되어 있다.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관련링크
-
http://39.cia756.com
1회 연결
- 이전글비아그라 구매 사이트에서 레비트라 약을 구입할 수 있나요? 25.12.08
- 다음글시알리스 복용 방법 25.12.08




